'[정신세계]/마인드와칭'에 해당되는 글 12건

  1. 미생 윤태호 작가의 '열등감에 대처하는 법'
  2. 아오스 11월 모임 후기
  3. 빈 배 되기
  4. 내 마음 속에 사는 두 마리의 늑대 이야기
  5. I see only the past
  6. 본성에 대한 기도문
  7. 아오스 7/28 모임 - 선생님께 이름을 받다.
  8. 성격이 확실하다는 것, 과연 좋은 말일까?
  9. 사육되고 있는가? 사육하고 있는가?
  10. 하나임을 아는 지혜
  11. 내 안의 상처 입은 아이와 만나기
  12. 세상 모든 인간 갈등의 시작 (4)


여러분 웹툰 즐겨보시나요? 저는 요즘 웹툰 ‘미생’을 즐겨보고 있습니다. 대기업 상사에 인턴으로 들어간 신입사원 장그래의 직장 생활 이야기로 국민 웹툰이라고 불리며 직장인들 뿐만 아니라 대학생, 일반인 사이에서도 정말 인기가 높은 작품이죠. 

제가 속한 LG전자 CTO 부문의 기술교류회에 명사 초청 강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얼마 전 ‘미생’의 윤태호 작가님이 오셔서 ‘작가로서의 삶, 창작의 시작부터 미생까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미생’의 인기 작가 윤태호의 성공 비결은? 

 윤태호 작가의 성장 과정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내면에는 남과 다른 약한 피부, 어려운 집안 환경, 미대 입시 실패로 인한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대 입시 실패 후 패배감에 빠졌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후 윤태호 작가는 보통 10년 가까이 걸린다는 문하생 수련 기간을 5년 만에 끝내는 놀라운 결과를 이뤄냅니다. 25살이라는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작가로 데뷔하고, ‘YAHOO’, ‘이끼’ 와 같은 인기작(강우석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죠?)을 거쳐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생’까지, 재미와 작품성 모두 인정받는 한국 최고의 만화가 중 한 명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윤태호 작가는 어떻게 ‘열등감’을 느낄만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만화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미생’은 국민웹툰으로 불릴만큼 인기가 높아 모바일 무비로도 제작된다고 합니다.



열등감에 대처하는 잘못된 방식


 ‘열등감(feelings of inferiority)’이라는 단어가 요즘 같이 일상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심리학자인 아들러(Alfred Adler)가 개인의 삶에 있어 열등감과 보상을 강조하면서부터 였다고 합니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에 따르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월하게 되는 것이며, 우월은 모든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동기로서 열등감을 보상하려는 선천적인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그에 따르면 열등감 자체는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좀 더 나아지고 싶다고 생각하며, 열등감이란 것이 어느 정도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신 내면의 열등감을 견디지 못해 바람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제거하려 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열등감에 대처하는 잘못된 방식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방식은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자아 도취를 느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일을 잘 못해 열등감으로 괴로운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는 밖에서 얻지 못하는 우월감을 가정에서 폭군이 됨으로써 집안에서 얻으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외부의 상황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열등감은 고스란히 남게 됩니다. 

두 번째 방식은 자신에게 열등감을 일으키게 하는 대상을 애써 무시하면서 자신과 관계된 것, 자신의 행동만이 중요하다고 여김으로써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정작 자신은 우월감을 과시하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생’에서도 이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장그래와 같이 인턴으로 들어온 한석율은 현장만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사무직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한석율이 그런 태도를 보인 것에는 어린 시절 현장 근로직으로 있었던 아버지가 파업으로 해고의 위기를 겪고, 공돌이라 무시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느꼈던 열등감이 영향을 준 것입니다. 한석율은 현장일에 대한 우월감을 과시함으로써 사무직에 대한 열등감, 피해의식을 벗어나려고 한 것이라 볼 수 있겠네요.

 ”자기가 타인에 대해서 우월한 것처럼 행동하는 모든 사람의 배후에는 열등감이 숨겨져 있다.”
 - A. Adler 

세 번째 방식은 활동의 영역을 제한함으로써 열등감을 느끼는 상황을 피하고, 자신이 지배력을 가지는 상황 속에 자기를 가두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병약하거나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서 생활하는 것이 힘들고 무시당하는 것이 두려워, 집 안에만 있고 어머니와 같은 가족이 24시간 자기를 보살피게 하면서 가족에 대한 지배를 통해 우월감을 느끼려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이러한 대처방식을 쓴 경험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키가 작은 편이었던 저는 운동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체육 시간에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에게 저도 모르게 열등감을 많이 느꼈겠죠. 그러다 보니 크면서 점차 운동을 하는 상황 자체를 피하게 됐고,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는 등 정적인 활동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머리를 쓰는 게임에서 남을 이기고 싶어하거나 지적인 논쟁에서 남을 이김으로써 우월감을 맛보려고 했습니다. 정신적으로는 남보다 내가 우월하다는 자기도취에 빠져 있었던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신체적인 열등감을 피하기 위해 제가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의 영역을 크게 줄여버린 것이었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모르고 살게 된 것이죠. 이런 식으로 열등감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의 활동 영역을 제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열등감에 대해 위와 같은 대처방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하려는 행동을 하고 있고, 그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들의 노력이 그 사람의 인생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익한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즉,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속여 우월감에 빠져 있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잠깐 동안은 자아 도취에 빠져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열등감을 자아내는 상황 자체는 그대로 남겨져 있기 때문에, 어떤 계기를 만나면 숨어 있던 열등감이 더 큰 괴물로 나타날지 모릅니다. 어떤 문제를 회피하는 것만으로는 진정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없습니다. ‘열등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윤태호 작가, 그를 키운 8할의 열등감 

 그러면 열등감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 방식일까요? 

 입시 실패 후 허영만 화백의 화실에서 문하생 생활을 시작한 윤태호 작가는 보통 문하생들이 뒷처리, 배경, 터치, 뎃생의 단계를 마치는데 7~10년이 걸리는데 반해 23살에 뎃생의 단계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25살에 만화 잡지에 연재를 시작하며 만화가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대학에 가지 못한 이유로 고등 학교 동창회에 초대받지 못한 아픈 경험을 했던 윤태호 작가는 ‘두고보자, 너희들 군대 갔다 오면 나는 작가가 되어 있을 테다’ 라고 다짐하여 25살에 만화가로 데뷔한다는 독한 목표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열등감이 강한 목표의식으로 승화되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던 거죠. 

 25살에 만화가로 데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첫 번째 작품을 연재하면서 윤태호 작가는 또 다시 큰 열등감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림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자신이 보기에도 스토리가 형편 없었던 거죠. 그래서 3개월 간의 연재 기간이 지옥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재가 끝난 후에 추가적인 연재 요청을 거절하고, 주변의 만화책을 싹 치우고 시나리오 작법 공부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문하생으로 그림만 그려도 월 3~4백을 벌었는데, 한 달에 40만 원만 벌면서 그림을 최소화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시나리오 글쓰기 공부만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윤태호 작가의 열등감에 대처하는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그린 만화의 스토리가 형편없다고 느꼈을 때, 자기 방어로 나갈 수도 있지만 윤태호 작가는 자신이 열등감을 느끼는 상황을 직시하는 용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당장은 그를 힘들게 하는 열등감을 견뎌내면서 차근 차근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해 나갔고 결국 열등감을 극복해 버리는 거죠. 

 지금은 누구나 공감하는 캐릭터와 스토리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윤태호 작가가 데뷔 당시에는 스토리를 못 만들어 열등감에 시달린 시기가 있었던 겁니다. 윤태호 작가가 만화가로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열등감과 보상이 개인 발달의 동기가 된다’는 아들러의 말이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윤태호 작가의 작품을 보면 만화 주인공들도 열등감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어릴 때부터 기원을 다니며 바둑을 공부했지만, 결국 입단에 실패하고 고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대기업 상사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죠. 간신히 인턴 과정을 마치고 계약직으로 입사하게 되지만, 일하면서도 끊임없이 정규직과의 차이를 느끼며 열등감에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결코 열등감에 지배당하지 않고 매일 회사 생활을 복기하며 자신만의 바둑을 이어갑니다. 연재 중이라 아직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독자들은 장그래가 자신의 노력으로 상황을 바꿔가면서 결국에는 열등감을 극복하고 정규직이 되리라 믿고 있을 겁니다.



내 안의 열등감과 만나는 법 

열등감은 결코 피하거나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존재합니다. 다만 그 열등감을 대하는 방식을 스스로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내 안의 열등감을 두려워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을 때,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납니다. 열등감은 어떻게 보면 내가 가야할 길을 알려주는 조언자가 되어 줄 수도 있습니다. 

내 안의 열등감과 만나는 또 다른 방법은 협력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남과 협력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신이 되지 않는 한 열등감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혼자서 모든 일을 잘할 수 없고, 어떤 한 영역에서 그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존재할테니까요. 협력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고 스스로 우월함을 과시하더라도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는 남보다 우월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함께 일하면 되니까요. 우월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열등감을 느낄 이유도 없습니다. 아들러는 협력을 통해 세상에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우리가 진정으로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윤태호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미생’을 다시 읽으면서 내 안의 ‘열등감’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열등감’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때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칩니다. 

남 앞에서 우월해지고 싶을 때, 내 안에 숨어있는 ‘열등감’이라는 아이를 만나보세요. 
그 아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들어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말해 주는 거예요. 더 이상 겁내지 않아도 된다고. 
더 이상 스스로를 꾸미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너와 함께 걸어 가는 용기를 내겠다고…


참고문헌 

<아들러 심리학 해설> A. 아들러 /H. 오글러 지음 / 설영환 옮김, 선영사. 
이미지 출처 미생 25수, 99수, 124수


* LG전자 공식 블로그 Social LG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원문링크  http://social.lge.co.kr/lg_story/the_blog/people/inferiority-fe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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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 있었던 아오스 포항 모임 (정확히는 감포였죠.) 후기를 뒤늦게 올립니다.


서울에서 거진 7시간을 운전해서 모임 장소인 감포의 한 펜션에 도착했습니다. 가는 길에 경주를 통해 갔는데, 가을이 끝나가는 시점이었지만 풍경이 너무나 멋있더군요. 멈춰서서 사진을 찍고 싶더군요. 경주를 거쳐 감포로 가는데, 감포가는 길도 해안도로라 시원스런 바다 풍경에 피로가 싹 가셨습니다.


모임장소인 펜션에 도착하니, 펜션 주변의 풍광도 참 멋졌습니다.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면 바다가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멋진 곳이었습니다. 멋진 장소를 섭외해주신 그림자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펜션 베란다 아래 풍경이 이랬어요 ^^


원장님과 그림자님, 깨침님, 도리님, 혜봉님 그리고 저까지 6명이 모여 저녁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눴고, 저녁시간에 심공님도 합류를 하셨습니다. 


저녁시간 전까지 저희들이 질문도 하고, 원장님께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한달이 지난 시점에 후기를 쓰려고 하니 기억이 안 나네요 ^^; 이래서 메모를 해야하나 봅니다. 그래도 한 가지 큰 줄기는 기억이 나는데요. 펜션 사장님께서 심어놓은 생뚱맞은 플라스틱 야자수를 가지고 의외로 긴 이야기를 나눴지요. 그 때 계셨던 분들은 아래 사진을 보면 생각이 나실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내려가면서 ReBirth 교재를 보면서 저 스스로 해답을 찾지 못한 질문 한 가지를 가지고 내려갔는데, 원장님께 질문을 드리고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원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제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해답이 보이더군요. 


이번 모임은 멋진 풍경에 눈만 즐거운게 아니고, 입도 귀도 즐거웠습니다. ^^

저녁으로 아구 수육을 먹었는데, 아구는 찜으로만 먹는 줄 알았는데 수육으로 먹어도 맛있더군요. 그리고 저녁을 먹고 간 노래방에서는 우리 아오스 분들의 멋진 노래 솜씨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지요. 


숙소에 들어와서도 술잔을 앞에 놓고 밤 늦게까지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혜봉님이 자신의 수행과 가족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원장님의 말씀에 저희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혜봉님의 심수봉 노래도 들을 수 있었는데, 혜봉님의 목소리를 듣는 심수봉 노래가 그렇게 좋게 들릴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일찍 올라와야 해서 저는 그날 밤 좀 일찍 잠이 들었는데, 나머지 분들은 좀 더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셨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서울로 올라오면서 호미곶에도 잠깐 들렀습니다. 멀리까지 왔는데, 그냥 가긴 아쉬워서요 ^^


멀리 포항까지 차를 몰고 갔다 오는게 만만치는 않았지만, 올라오면서 역시 갖다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릿 속이 복잡해서 내려가도, 올라올 때는 한결 마음이 편해져 있습니다.

같은 길을 가는 좋은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이래서 좋은가 봅니다.


* 아오스 (AOSS : Area of Source Spirit) 홈페이지 http://www.aossa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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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 되기

빈 배 되기


어느 이른 아침, 사공이 배를 저어 안개가 자욱한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저만치 앞에서 배 한 척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서로 부딪힐 것 같아서 사공은 큰 소리로 피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다가왔습니다. 사공은 더 큰 소리로 외쳤고 그래도 배가 계속 다가오자 화를 내고 욕설을 퍼부었지요. 마침내 서로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사공은 상대편 사공에게 따지려고 주먹을 불끈 쥐고 배를 살펴보았는데 아무도 타고 있지 않더랍니다. 순간 사공은 머쓱해져서 껄껄껄 웃고 말았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isydney.tistory.com/441


그 배에 누군가 타고 있었다면 큰 싸움이 벌어졌겠지요. 하지만 배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싸울 일도 자연히 사라졌습니다. 배에 사람이 있든 없든 배가 서로 부딪혔다는 객관적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싸움이 일어나느냐 일어나지 않느냐가 결정됩니다.

당신은 상대방에게 빈 배가 되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빈 배가 될 수 있을 뿐입니다. 

from <삶으로 명상을 가져오는 법>


* 이 책의 위 글은 장자의 유명한 시 '빈 배'를 각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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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주민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줬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속엔 두 마리의 늑대가 산단다. 

한 마리는 사랑과 평화를 좋아하는 늑대고 

다른 늑대를 화를 잘 내고 잘 싸우지." 

그러자 손자가 물었다. "그럼 어느 쪽이 이기나요?"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내가 밥을 주는 쪽이 이긴단다."



image from Flickr http://j.mp/OzYC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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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ee only the past

며칠 전 아침 운동을 하면서 트레드밀에 달린 TV로 아침마당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여자분이 게스트로 나와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미국 유학 얘기 이런게 나와서, 저는 최근에 방송에 자주 나오던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의 김수영씨 인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약간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전에 두드림에인가 TV 프로에 나온걸 본 것 같은데, 그 때 김수영 씨에 대해서 좀 잘난척 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방송을 조금 보다보니 게스트로 나온 그 여자분은 김수영씨가 아니었습니다. 가수를 하다 미국으로 로스쿨을 가서 국제변호사가 된 이소은씨 였습니다. 제 노래방 18번 중에 이소은씨가 김동률과 부른 '기적'도 있고, 이소은씨는 제가 좋아하는 가수였죠. 그걸 알고보니 화면의 그 여자분에 대한 제 감정이 싹 바뀌더군요. 


그 순간 저는 최근에 읽었던 <기적수업 A Course in Miracles> 워크북의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I see only the past.


My mind is preoccupied with past thoughts.


I see nothing as it is now. 


과거의 생각에 사로잡혀 현재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하는 문장들이었죠.


저는 TV화면에 나온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제가 이미 가지고 있던 틀에 맞춰

즉각적으로 판단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대로인데, 제가 내린 판단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바뀐 것입니다. 처음 김수영씨에 대해 제가 거부감을 가졌던 것 조차 그 이전에 제가 사람에 대해 가진 편견, 잘못된 가치관 때문에 김수영씨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제 내부의 문제를 투사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기적수업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My thoughts do not mean anything.


기존에 내가 가졌던 생각, 신념 이러한 것들을 벗어나 내가 보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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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에 대한 기도문

** 아오스 모임에서 사용했던 기도문이 마음에 들어서 옮겨 봅니다.



본성에 대한 기도문


 

내가 세상에 나온 영혼의 길을 걸으며

나의 일상을 통해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고

수많은 관계와 상황 안에서 나를 성숙되게 하여

삶의 흔적들이 나를 일깨우는 과정이 되게 하소서


자연과 내가 하나이고 우주와 내가 하나임을 알고

하나됨 안에서 거하여 나를 통하여 사랑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내가 항상 깨어서 나의 소중한 순간순간이 사랑이 되고 감사가 되어

모든 생명과 우주의 영혼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씨앗이 되게 하소서


내가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가 당신의 길을 좇아가는 무리의 발자취가 되어

그들이 길을 잃고 방황할 빛이 되고 희망이 되게 하소서


내가 하나를 버림으로서 우주를 얻고

내가 자신을 사랑하게 됨으로서 당신과 하나됨을 알게 되니

이제 이상은 분리와 이원성으로 인한 경험을 필요치 말게 하시고

저들의 시련과 고통을 기꺼이 내가 껴안아 당신의 품으로 인도하게 하소서


때로 내가 시험에 들어 방황하거나 현실의 무게에 힘들어할

세상의 타성의 힘과 마주하여 작아질

당신의 힘으로 눈뜨게 하고 마음 열게 하시어

참을 보고 진실을 말하며 사랑 아님을 행하지 말게 하소서


세상 안에서 우리들이 가꾸는 희망의 꿈들이 헛되지 않고 영글어

얼이 되고 빛이 되어 저들의 가슴 안에서 피어나게 하소서


내가 나의 역할을 다하고 다시 영혼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과 함께하고 있음을 잊지 말게 하소서


모든 염원을 진실의 마음 담아

당신의 이름 받들어 소망합니다



- 김상욱 님, 아오스 모임 201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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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부산에서 열린 아오스(AOSS : Area Of Source Spirit) 모임에 참석을 했습니다. 

길님의 소개를 받아 장흥에서 있었던 모임에 처음으로 가보고, 이번이 두 번째 참석이었어요.

지난 번 모임에서 김상욱 선생님께서 저보고 다음 모임에 또 오면 이름을 지어주신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잊지 않고 선생님께 부탁드렸더니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지평(地平) 


무슨 의미로 해석하면 될까요?

땅의 평화? 하늘과 그 밑의 사람을 받쳐주는 땅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의미일까요?

이 이름을 보고 아내는 내가 목(木)이고 자기가 흙(土)이니, 

자기한테 평화를 가져다 주라는 뜻이라고 하는군요 ^^;

세상에 우연은 없고,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겠지요. 

선생님께서 제게 이런 이름을 지어 주신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이름이 생겨서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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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tz Perls 



퍼얼스는 성격이 없는 것이 건강한 유기체라고 말했다. 

성격은 예측 가능한 고정된 행동을 낳으며 

그러한 행동은 유기체 성장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성격이 분명하다는 말은 서로 똑 같을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고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인다는 말과 다를바 없으며, 

색안경을 끼고 사리 분별을 한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그럼 성격이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옳고 그름의 판단, 좋고 싫음의 판단 없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어쩌면 '도'의 경지, 부처의 경지일 것이다.


우리같은 범인이 성격 없이 살 수는 없겠지만, 

생활 속에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성격' 좀 있는 사람은 아닌지 

그 때 그 때 스스로를 비춰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성격 있다, 성격이 분명하다는 말,

이거 결코 좋은 말로만 볼 수는 없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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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탈트 심리치료 중에 인상 깊은 구절이 있어 옮겨 봅니다.



아이들이 초기에 하는 대표적인 행동 중의 하나가 
엄마가 밥을 먹여주려고 하면 "아니, 내가 내가!" 하면서 
엄마 밥 숟가락을 뺏어서, 입에 밥 숟가락 가져가지도 못하고 
죽죽 흘리면서도 자기가 할려고 그래요. 

이럴 때 엄마가 조금 조금씩 도와주되 본인이 하도록 허락하면 
애는 생생하게 삶을 사는 것이고, 
'애는 넌 자꾸 흘리잖아. 엄마가 해줄께' 하고 해주게 되면
애는 밥 먹는 자체가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냥 사육되는 거예요.

이게 융합된 관계예요.

게슈탈트 심리치료 - 접촉경계혼란 이론 중 '융합'



접촉경계혼란 이론에서 '융합'은 다음과 같은 의미입니다.



융합은 부부사이나 부모와 자식 관계, 오랫동안 사귄 친구 사이, 연인 사이에서

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융합이 사람 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예요.

개인과 소속 단체 사이, 개인과 회사, 개인과 국가 간에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말, 

때로는 위험한 말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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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임을 아는 지혜


아래 글은 틱낫한 스님의 <화해, 내 안의 치유하기> 책에 있는 글입니다.
 

  어느 날 나의 왼손은 못을, 오른손은 망치를 들고 있었다. 나는 벽에 그림을 걸려고 했지만 깨어 있음이 부족했다. 그래서 못을 치는 대신 손가락을 치고 말았다. 곧바로 나의 오른손은 망치를 내려놓고 자기 자신을 돌보듯 왼손을 돌보았다. 나의 왼손은 오른손에게 화내지 않았다. '하나임을 아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오른손은 "왼손아! 내가 너를 돌보고 있어. 너는 그것을 잊으면 안돼."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의 왼손은 "오른손아! 너는 내게 나쁜 짓을 했어. 그 망치 이래 내! 너도 한번 맞아 봐! 라고 말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너'도 '나'도 없고 '분별'도 없었다. 둘은 하나였다. 삼위일체와 마찬가지였다. 성부가 성자 안에 있고, 성령이 성자와 성부 안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서로 이어진 존재다. 하나 속에 다른 둘이 들어 있는 것이다. 통증이 좀 있었지만 나의 두 손은 함께 고통을 나누었다. 사랑의 관계 속에 분별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평등심'이다. '하나임을 아는 지혜'가 함께할 때 행복과 고통은 더 이상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당신의 왼손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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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내가 겪었던 일이다.

  회사에서 일 하는 중에 어떤 일로 인해 아내가 불만에 가득찬 문자를 내게 보냈다. 그냥 두면 일이 커질 것 같아 나는 회의 중에 아내를 자극시키지 않으면서 화를 달래야 했고, 문장 하나 하나를 신중하게 만들어 문자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아내가 보내는 문자에는 내 잘못을 탓하는 공격성이 담겨 있었고,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그 공격성에 내가 상처받은 만큼 내 마음 속에 울화가 쌓이고 있었다.

  퇴근 길 전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 내 머리 속은 어떻게 하면 집에 가서 아내와 대화로 이 문제를 잘 풀 수 있을까로 가득찼다. 그리고는 최근에 공부한대로 아내의 말을 일단 잘 들어주고 감정을 수용해 주면서 이야기를 해 나가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내 다짐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벌어졌다. 아내와 대화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하는 말에 가시가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새 내가 차마 생각하지 못한 만큼의 공격적인 말을 아내에게 퍼붓고 말았다. 내가 원래 하려고 했던 건 이런게 아니었는데,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에 말을 하고 나서 나 스스로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아내는 나의 가시 돋힌 말에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순간 너무나 미안해 졌다. 하지만 이미 뱉어 버린 말은 주어 담을 수 없는 법, 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나는 너무 괴로웠다. 

  그 일이 있고 다음날, 틱낫한 스님의 <화해, 내 안의 아이 치유하기>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틱낫한 스님은 '플럼빌리지'라는 수행공동체를 운영하시는데, 아래 글은 그곳에서 수행을 한 어떤 외국 분의 치유 경험담이다. 


사랑으로 대화하기
   

- 조앤 프라이데이


  어머니는 거의 1년 가까이 많이 편찮으셨다. 그 사이 여덟 번이나 입원을 했고, 입원과 입원 사이에는 전문 간호사가 돌보는 노인요양센터에 가 계셨다. 언젠가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뵈러 노인요양센터에 간 적이 있다. 2차세계대전 참전용사인 아버지는 환경을 통제하는데 능해서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없도록 조건을 잘 맞추어 놓는 분이셨다. 아버지는 성격이 엄청 꼼꼼했다.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해야 마음을 놓는 분이었다.
  무엇이든 잘 보살폈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돌보는 일도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어머니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었고, 그 것을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이 상황을 아버지는 무척 힘들어하셨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면 아버지는 더욱 통제하려고 애를 썼고, 그러는 사이 점점 참을성 없고 짜증과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어 갔다. 그것이 아버지의 습관 에너지였다.

  우리는 노인요양센터에 앉아 있었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짜증과 화를 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점점 어머니를 참아내지 못했다. 거기 앉아 있던 나는 내면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습관적으로 아버지에게 소리쳤을 것이다. "그만 좀 해요! 어머니도 어쩔 수 없잖아요." 하지만 나는 그리하는 대신 잠시 멈추고 숨을 쉬었다. 나는 그 방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면 나와 가족에게 더 많은 고통을 초래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했다. "잠시 산책 좀 하고 올게요." 나는 주차장으로 나가서 걷기 명상을 했다.

  나는 호흡을 알아차리며 걸었다. 그렇게 몇 분 동안 걸어 마음이 차분해졌을 때 내 안에 있던 울화를 초대했다. 그 울화와 함께 숨을 쉬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깊이 보았다. 과거의 어느 순간이 떠올랐다. 내가 세살이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화를 내면서 급하게 다그친 적이 있었다. 내가 지금 아버지에게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지금 여기에서 그런 격렬한 반응을 하고 있는 존재는 바로 그때 심하게 상처받은 세 살짜리 아이였다. 

  나는 그 세 살짜리 아이를 잘 보살폈다. 그 아이을 안아 주면서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보라고 했다. 당시 그 아이는 불과 세 살밖에 되지 않아서 그 일을 고깝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지만, 사실 아버지의 행동은 아버지의 불행에서 나온 일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아버지는 그 아이가 아닌 그 누구에게라도 그렇게밖에 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 아이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그렇게 이해를 하고 나니 나 자신이나 아버지에게 느끼는 감정이 자비심으로 돌아섰다. 틱낫한 스님이 늘 가르치신 것을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이다. 즉 깨어 있음이 집중으로 이어지고, 집중이 통찰력으로 이어지며, 통찰력이 이해로 이어지고, 이해가 자비로 이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운 느낌이 들면 평생 달아나기만 한다. 하지만 단지 모든 것을 멈추고 깊은 호흡을 한 후 우리 안에 있는 느낌을 감싸 안는 것만으로, 변화의 과정이 시작되고 두려움에 대처하는 우리의 능력이 확장된다. 이 수행은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이끌어 내는데, 나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것과 동일한 느낌을 체험했던 세 살짜리 아이와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만남이 있은 후 나는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이제 어머니 아버지가 계신 그 방으로 돌아가도 될만큼 내 상태가 좋아졌던 것이다.

  그 방을 나올 때는 아버지가 무서운 괴물로 보였지만 다시 돌아갔을 때는 오직 아버지의 고통만 느겼졌다. 아버지의 감정은 너무나 격력해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얼마나 두려운지 알 수 있었다. 당시 내가 아버지에게 느꼈던 감정은 자비심뿐이었다. 자비심만을 품고서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마디는 "아버지가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 게 가슴 아파요. 제가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요?" 였다.

  내가 나 자신의 고통에 얽매여 있었을 때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볼 수 없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이성을 잃고서 나의 고통만 바라볼 뿐이었다. 만약 당시에 내가 격한 감정을 잘 보살피지 못했다면 나의 감정은 지극히 독선적으로 흘렀을 것이다. 나는 좋은 딸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며, 오직 어머니에게만 관심이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을 것이다. 어머니를 잘 돌봐 드리기 위해서는 아버지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말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리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 안에 살고 있는 아버지가 비난과 비판에 반응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마 내가 그렇게 했다면 아버지는 더 거세게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는 기분이 들어 어머니를 더욱 심하게 다그쳤을 것이다. 결국 내가 어떻게 막아 보려고 했던 바로 그런 상황을 초래했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수행을 해왔기에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또 그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아버지에 대한 비난을 멈췄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여전히 화의 감정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똑같은 말 ("아버지가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 게 가슴 아파요. 제가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요?")을 했더라도 아버지는 내 목소리의 느낌, 얼굴 표정, 신체 언어를 통해 자신이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깨어 있는 말을 한다는 것은, 단지 그 상황에 적합한 말을 고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나쁜 감정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깊이 보기를 통해 내 안에 자리한 이해의 장에 도달할 때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나와 갈등 관계에 있는 상대방에까지 자비심이 우러난다. 내 마음 속에 자리한 고통이 변화하는 순간 나는 우리 두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그리되면 내가 어떤 말을 고르느냐는 그리 중요치 않다. 상대방은 오직 사랑만을 느낀다. 사람들은 사랑받고 있을 때 그것을 알고, 사랑받고 있지 못할 때도 그것을 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발견한 게 하나 있다. 이 수행을 해도 격렬한 감정은 여전히 경험하지만 다루기 힘든 감정의 세기가 작아진다는 사실이다. 나는 "안녕, 화야! 나의 작은 친구! 네가 돌아왔구나."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바로 그 순간 감정의 격력함이 사라진다.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를 잘 돌봐 줄 때, 비록 고통의 느낌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아이와 나의 관계, 세상에 대한 나의 인식, 남들과의 관계에 대한 나의 인식은 변화했다. 깨어 있음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그날 왜 내가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을 하게 되었는지 가까스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내가 느낀 감정을 공감해줘야 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가 느낀 감정은 모른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 나는 아내와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안의 상처받고 화난 아이부터 먼저 달래줘야 했다. 내 안에 나쁜 감정이 생겼음을 인정하고, 그 감정부터 보살피고 내 안의 상처입은 아이부터 달래줘야 했다. 그리고 나를 질책하는 아내가 아니라 아내의 안에 있는 다섯살 아이를 볼 수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머리 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아내를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 때 대화를 시작했어야 했다.


내 안에는 아이가 있다.
쉽게 상처받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내 안에는... 나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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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1875-1961



융은 프로이트와의 갈등경험 후에 인간의 성격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20~30년간 연구하게 된다. 이로 인해 나온 이론이 "심리유형론 (MBTI검사의 토대가 되는 이론)" 이다. 심리유형론의 요지는 "인간의 고통과 갈등은 '서로 같다' 또는 '서로 같아야 한다'는 기대에서 비롯된다" 는 점이다. 융의 심리유형론 연구에 따르면 서로 다른 유형이 존재하며, 이런 서로간의 차이를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만남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from 융의 생애와 분석심리학 이론

 

  요즘 심리학의 기초 서적들을 읽으면서 기대보다 좋은 글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왠만한 자기계발서들보다 심리학 책들을 읽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서점에 베스트셀러라고 깔려있는 '심리학'이라는 단어만 제목에 달아놓은 책들 말고, 진짜 심리학 이론서들 말입니다. 칼 융의 생애에 대한 글에서 발췌한 위의 인용글도 짧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던져줍니다. 
 
  우
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갈등의 근원을 살펴보면 서로간에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다른 이들의 생각과 행동의 이유는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남들의 행동을 바꾸려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상사와 부하직원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 진보와 보수진영간의 갈등....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죠.
세상 모든 갈등의 시작은 남과 자기의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비롯됩니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간에서 이런 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 자녀니까, 내 부모니까, 내 친구니까 나와 생각이 동일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융에 따르면 그런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심리적 유형이 다를 수 있고, 이 점을 이해해야 진정한 의사소통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기질평가, MBTI 검사, 애니어그램 등 사람의 기질, 성격 유형을 분석하는 툴을 통해 사람들을 여러 가지유형으로 분류하고, 각 유형마다의 특성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서로 다를 수 있으니, 자기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려는 기본적인 마음자세를 항상 잊지 않는 것이 진정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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