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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말하고 듣는 사람, 읽고 쓰는 사람 (2)

by 지평(地平) 2020. 11. 7.

<책, 이게 뭐라고>에는 '말하고 듣는 사람'과 '읽고 쓰는 사람'의 차이에 대한 언급이 여러번 등장한다. 어제 글에 넣지 않은 다른 부분을 옮겨 본다.

말하고 듣는 사람들이 읽고 쓰는 사람들보다 현재를 더 많이 사는 것 같다. 읽고 쓰는 부류만이 수십 년 수백년 뒤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을 놓치게 된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읽고 쓰는 이들은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걸까? 대신에 우리는 외로움을 덜 탄다고 할 수 있을까?

말하고 듣기는 현재 눈 앞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활동이다. 읽기와 쓰기는 그렇지 않다. 읽기와 쓰기에 있어서는 행위자와 그 대상이 같은 시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읽고 쓰는 사람들이 미래를 생각하고,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을 놓친다는 지적은 그럴듯하다.

동시에 내 형편이 확 나아져, 말하고 듣는 세상의 돈벌이를 아예 떠나기를 욕망한다. 말하고 듣는 세계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이라는 한 인간, 한 인격을 판매해야 하는 것 같다. 강연, 방송, 영업, 상담, 정치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기술자나 연구자와는 다른 삶을 산다. 그들은 동시대의 타인들이 보기에 매력이 있어야 한다.

말하기와 듣기는 나를 드러내고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기와 듣기의 세계에서 인기를 끌는 데에는 그 사람의 매력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쓰기의 세계는 다르다.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 유튜브와 블로그를 예로 들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유튜버는 말하기를 잘해야 하는 동시에 목소리, 외모, 분위기와 같은 유튜버 개인의 매력이 중요하다. 유튜버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구독자와 조회수가 달라진다. 블로그는 다르다. 글에서도 물론 글쓴이의 매력을 감지할 수 있지만, 글에는 그 사람의 외모나 목소리 같은 외형적인 요소가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는 개인의 매력이 부족한 사람은 그래서 유튜버 보다는 블로그가 더 적합하다.

소셜미디어에 콘텐츠를 만들려고 할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매체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유튜브가 대세라고 무조건 유튜브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말하고 듣는 사람'이라면 유튜브를, '읽고 쓰는 사람'이라면 블로그를 해야 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다 잘하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어느 한 쪽이 더 편하기 마련이다. 나는 당연히 '읽고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블로그가 편하다. 올해 유튜브를 시도했었는데, 내가 올린 영상에는 내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 텍스트 중심의 화면에 나래이션만 하는 식으로 영상을 만들었는데, 그렇게 만들게 된 것도 내가 '읽고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알겠다. 나 같은 읽고 쓰는 사람은 브이로그를 잘 만들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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