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게 뭐라고>는 장강명 작가가 책 제목과 같은 이름의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의 진행자로 활동하면서 경험한 것을 쓴 에세이다. 그는 팟캐스트 진행자로 참여한 첫 방송을 망치면서 자신이 '말하기와 듣기'에 서툰 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한다. 그는 텍스트라는 부르는 언어 기호에는 남들보다 더 집중을 잘하지만, 비언어적 신호와 맥락으로 소통하는 법에는 무지했다. 한마디로 대화에 서툰 인간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장강명 작가는 자신이 '읽고 쓰는 사람'이며 '말하고 듣는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장강명 작가는 '말하고 듣는 사람'과 '읽고 쓰는 사람'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더구나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그래서 쓰는 인간은 말하는 인간보다 일관성을 중시하게 된다. 말은 상황에 좌우된다. 그래서 말하는 인간은 쓰는 인간보다 맥락과 교감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나는 성실히 읽고 쓰는 사람은 이중 잣대를 버리면서 남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하게 되고, 그로 인해 반성하는 인간, 공적인 인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신 그는 약간 무겁고, 얼마간 쌀쌀맞은, 진지한 인간이 될 것이다. 그사이에 충실히 말하고 듣는 사람은 셀린과 제시처럼 다정하고, 비언어적으로 매력적인 인간이 된다.
여러분은 위 설명에 동의하는가? 어떻게 보면 비언어적 소통에 취약한 본인을 변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장강명 작가의 해석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읽고 쓰는 사람'의 특성을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사례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텍스트에서 단어 하나가 바뀔 때의 미묘한 의미 차이는 잘 파악하지만, 대화 중에 상대방의 표정이나 몸짓이 뭘 의미하는지 잘 눈치채지 못한다. 비언어적인 표현도 잘 못한다. 반응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대신 안정적이고 일관성이 높은 편이다.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나의 이미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공통으로 나오는 말이 '꾸준하다', '한결같다'는 말이었다.
읽고 쓰기만 하다보니 비언어적인 소통에 취약해진 것일까? 아니면 비언어적인 소통에 무관심한 성격이 읽고 쓰기에 적합한 것일까? 내 생각에는 후자가 맞을 것 같다. 비언어적인 소통을 잘 못하니까 텍스트로 소통하는 것이 편하고, 편한 걸 자주 하다 보니 '읽고 쓰는 사람'으로 더 굳어지게 된 것일테다.
그런데 '읽고 쓰는 사람'도 '말하고 듣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타고난 사람들만큼이야 안 되겠지만, 말하고 들어야 하는 환경에 자신을 자주 노출시키다 보면 비언어적 소통 능력이 향상된다. 장강명 작가가 팟캐스트 진행자로 활동하는 횟수가 늘어가면서 점차 '말하고 듣는' 사람이 되어간 것처럼, 나 역시 독서 모임 진행자로 4년여 동안 활동하면서 말하고 듣는 게 많이 늘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말하고 듣는 사람인가? 읽고 쓰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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