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부터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읽고 있다. 한승혜 작가의 서평 글쓰기 수업 2주차 수업 사전 과제가 <슬픔이여 안녕>을 읽고 서평을 쓰는 거여서 이 유명한 제목의 소설을 처음 읽게 되었다.
사강의 소설은 처음인데 올해 읽었던 <일의 기쁨과 슬픔>이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같은 한국 소설과는 문체도 다르고, 주제도 완전히 달라서 색다르게 느껴졌다.
나를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오늘 무엇인가가 비단 망처럼 보드랍고 미묘하게 나를 덮어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킨다.
첫 페이지의 문장들이 감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해서 읽어나가면서 스토리도 흥미롭고, 심리 묘사가 뛰어난 훌륭한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60년 전에 나온 소설인데 고루한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읽으면서 프랑스 영화의 장면이 그려질 정도로 묘사가 뛰어났다. 서평 글쓰기 수업 덕분에 이 작품을 읽게 된 것에 감사했다. 아마 이 수업이 아니었다면 <슬픔이여 안녕>을 평생 만나지 못했을 것 같다.
이번 서평 쓰기 과제가 줄거리 요약에 중점을 두고 서평을 쓰는 거라 재독을 할 때는 내용 요약을 꼼꼼하게 해가면서 읽었다.
마인드맵으로 줄거리를 요약하고, 중요한 문장에 대한 나의 생각은 노션 독서노트에 적었다.
오늘까지 서평을 써서 제출해야 하는데 아직 줄거리 요약이 안 끝나서 제출 기한을 못 맞출 것 같다. 오늘까지 내용 요약을 마치고, 서평을 내일 써야겠다.
어제 오전에 카페 성장판에 참여하면서 장강명 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를 읽었는데 <슬픔이여 안녕>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그럼에도 <슬픔이여 안녕>을 다시 읽으면서 몇 번이나 '이게 이런 책이었나?' 하고 놀랐다. 60년도 전에 나온 소설인데 낡거나 고루한 느낌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전개가 아주 빨라서 줄거리를 다 아는데도 몰입됐다. 인물들의 어둡고 미묘한 심리를 날렵하게 잡아내는 솜씨도 인상적이었다.
(중략)
어떤 면에서는 <슬픔이여 안녕>이 <빙점>보다 더 운이 없었다. 주제도 묵직하게 들리지 않았고, 사강이라는 작가의 화제성이 너무 커서 작품이 받아야 할 관심을 앗아갔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슬픔이여 안녕>은 시간의 시험을 버틴 고전이다.
두 번을 읽고 난 지금, 장강명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슬픔이여 안녕>은 기대보다 훨씬 훌륭한 작품이었다. 서평을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들면서도 설렌다. 잘 써보고 싶다.
'100일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이비드 보위 그리고 프랑수아즈 사강 (0) | 2020.11.11 |
---|---|
한승혜 작가의 서평 글쓰기 수업 두 번째 시간 메모 (1) | 2020.11.10 |
말하고 듣는 사람, 읽고 쓰는 사람 (2) (0) | 2020.11.07 |
말하고 듣는 인간, 읽고 쓰는 인간 (0) | 2020.11.06 |
"아빠 이 책 너무 재밌어. 책 또 사줘" (0) | 2020.11.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