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인>의 원작을 쓴 마라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읽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이탈리아의 바닷가 작은 마을로 밤에도 열기가 가시지 않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곳이다. 이 곳으로 사라와 자크 부부, 루디와 지나 부부, 독신인 다이아나, 다섯 친구가 휴가 여행을 온다. 루디와 지나 부부는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수시로 싸우지만 서로에게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지나는 남편을 두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전혀 생각하지 않고, 루디도 비록 아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욕하긴 해도 헤어질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라와 자크 부부는 다르다.
"다 지겨워? 그런 거야?"
"그거야, 지겨워서 그래."
"바람피우고 싶지 않아?"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지."
사라와 자크 부부는 이런 대화를 나누고 서로가 헤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 앞에 멋진 모터보트 소유하고 있는 남자가 나타난다. 사라의 눈에 남자가 들어오고, 그 남자도 사라를 발견한다. 둘은 남편이 없는 휴양지 숙소에서 관계를 가진다. 사라와 남자의 관계를 눈치 챈 자크는 파에스툼으로 여행을 가자고 사라에게 얘기한다. 로마로 가는 길에 타키니아에 들러 작은 말이 그려진 벽화를 보자고 청한다. 사라는 처음에는 여행을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남자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은 그 남자를 만나러 가지 않고, 남편에게 원한다면 여행에 따라 가겠다고 말한다.
남편과의 부부 생활에 권태로움을 느낀 여자가 처음 만난 남자와 외도를 하려다가 그 생각을 접고 남편과 화해하는 스토리로 볼 수도 있다. 이 책의 맨 앞에는 한 쪽 분량으로 설명이 붙어 있는데 이렇게 씌어 있다.
결국 책의 말미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벽화,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의 영향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여운이 남는다.
나는 이 해설에 동의할 수 없다. 사라가 남자와의 밀회를 포기한 것은 자크와 루디가 찌질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자크는 말로는 사라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처럼 얘기하면서 남자를 만나서 사라의 얘기를 하고, 사라의 앞에 그 남자와 함께 나타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러고는 사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내 아내랑 매일 밤을 함께 보낼 사람이니까, 내가 파에스툼을 여행하는 동안 말이야."
자크는 그동안 여러번 바람을 폈다. 본인은 자신이 원할 때마다 부부 관계에서 휴가를 떠나고서는, 아내가 한 번 다른 남자와의 휴가를 꿈꾸는 것을 보고서는 참지 못한다.
자크의 친구 루디는 사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엔 휴가가 없어.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 것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랑엔 휴가가 없어."
얼핏 들으면 멋있는 말이지만 사라에게 바람을 피우면 안 된다고 협박하는 말이 아닌가. 친구 자크가 고통받는 걸 막기 위해서라면 다른 놈들은 백 명이고 천 명이고 해치울 수도 있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남자들은 휴가를 제멋대로 다녀오면서 왜 여자는 휴가 한 번을 못 가게 막는 건가. 남자가 휴가를 떠날 자유가 있다면 여자도 원할 때 휴가를 다녀올 수 있어야 한다.
사라는 자크에게 당신이 원하면 파에스툼에 가겠다고 말한다. 자크와 루디의 찌질함에 비하면 사라는 대인배다. 사라가 남자를 만나러 가지 않은 것은 자크와 루디의 대응을 보면서 굳이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지, 휴가의 꿈을 완전히 포기해서가 아니다.
소설의 마지막 문단을 보자. '그녀는 아이에게 다시 한 번, 바람이 불고 시원한 밤을 누릴 수 있는 다른 휴가에 대해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 밤에는 비가 내리기를 바랐다. 그녀는 그 희망을 간직한 채, 매우 늦게 잠이 들었다.' 사라의 휴가는 유예되었다. 밤에 비가 내리기 전까지 또 다른 휴가에 대한 그녀의 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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