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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할 수 있는 일 - <연년세세> 황정은

by 지평(地平) 2020. 11. 16.

설과 추석이 되면 부모님과 형네 가족, 우리 가족은 큰집으로 모인다.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큰집 식구와 우리집 식구 모두는 봉고차를 타고 할머니와 큰아버지 묘소가 있는 산으로 가서 다같이 성묘를 한다. 10명이 넘는 인원이 가서 절을 하고 온다.

어머니는 명절에 큰 집에 오기 전에 아버지와 단 둘이서 양평을 다녀오신다. 양평에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묘소가 있다. 몇 년 전에는 나와 아내도 동행한 적이 있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가지 않았다. 형네도 가지 않는 것 같고 지금은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만 다녀오신다. 나는 크면서 외할아버지와 같이 산 적이 없어서 기억나는 것이 없기도 하고, 거기를 다녀오려면 하루가 다 날아가기 때문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함께 가질 않았다. 어머니도 더 이상 같이 가자고 하지 않으신다.

황정은 작가의 <연년세세> 연작소설집은 '파묘'로 시작한다. 일흔둘이 된 이순일은 내년에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을 예정이었고, 이제는 평지에서도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 못했다. 이순일은 군사분계선 근처 산에 있는 할아버지의 묘소를 더 이상 찾아가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찾아오는 이도 없이 버려질 묘를 걱정하여 딸 한세진과 함께 파묘를 하러간다.

'파묘'에 등장하는 이순일의 이야기에 내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아버지가 나이가 드셔 운전이 힘들어 지신 후에도 하루에 몇 번 없는 시외버스를 타고 다녀 오곤 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왜 그리 매년 빠뜨리지 않고 힘들게 양평 묘소를 찾아가는지 이유를 몰랐다. 아니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았다는게 맞다.

이순일이 매년 낫으로 길을 내며 거기로 올라가는 이유를 한세진은 이해했다. 엄마에게는 거기가 친정일 것이다. 그 묘가.
할아버지.

미국에서 오래 산 사람과 미국 사회에 관한 책을 읽은 사람 중에 누가 미국에 대해서 잘 알까? 미국에서 산다고 미국에 대해서 더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 함께 오래 살았다고 해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은 아니다. '파묘'를 포함해서 <연녀세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어머니와 아버지, 형과 나, 아내와 처형, 장모님과 아내의 관계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은 가상이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연년세세>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머니 세대와 자식 세대 모두를 보게 만든다. 황정은은 <연년세세>를 통해 소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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