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와서 맥주 한 캔 하는 건 삶의 소소한 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매일 글쓰기를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맥주 한 캔만 마셔도 노곤하고 눕고 싶다. 누으면 잠이 쏟아진다. 글쓰기를 포기하고 그냥 자버릴까 하는 유혹에 빠진다.
과거에 책을 쓸 때에도 혼맥이 문제가 되었다. 나는 주말에 몰아서 원고를 쓰는 편이었는데 금요일 밤에 주말의 시작이라고 마음 편하게 혼맥을 하다보면 한 캔이 두 캔이 되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카페로 나가 바로 글쓰기 모드로 바꿔야 하는데, 오후 늦게 일어나면 하루를 종치기 일쑤였다.
혼맥은 글쓰기의 적이다. 그런데 혼맥을 끊기는 쉽지가 않다. 대한민국에 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치킨, 피자를 먹을 때면 맥주를 마시게끔 조건 반응이 학습되기 때문이다. 치킨, 피자를 먹을 때면 꼭 맥주를 찾게 된다. 어제도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이들이 피자를 먹고 있는게 아닌가. 피자를 먹으면서 맥주 한 캔을 안 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맥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은 편의점 맥주 4캔에 만원 할인이다. 편의점을 갈 때마다 한 캔만 사오는게 아니라 4캔을 사오게 만드니, 냉장고에 맥주가 항상 있게 된다. 맥주가 당길 때 집에 맥주가 없으면 밖에 나가는 귀찮음 때문이라도 참게 되는 경우도 생기는데, 냉장고에 맥주가 상시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유혹을 이기기는 정말 어렵다.
<습관의 힘> 책에 의하면 습관은 '신호 -반복행동 - 보상'의 루프가 반복되면서 형성된다.
나의 혼맥하는 습관에서 신호- 반복행동 - 보상을 파악해보자.
- 신호 - 퇴근 후의 피로감, 치킨, 피자
- 반복행동 -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신다
- 보상 - 스트레스 해소, 만족감, 나른해짐
문제가 되는 것은 반복행동이니, 반복행동을 할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들거나 비슷한 보상을 줄 수 있는 다른 반복행동으로 바꿔줘야 한다. 일단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사오지 말아야 한다. 반복행동을 쉽게 만드는 환경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복행동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것이 없다면 귀찮아도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나가게 될 수 있다. 비슷한 보상을 줄 수 있는 다른 반복행동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찾은 것은 '하늘보리' 마시기다. 하늘보리를 한 박스 사다놓고 시원한 맥주가 당길 때마다 대신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해둔 하늘보리를 마시는 거다. 하늘보리도 맥주처럼 보리 음료가 아닌가.
그런데 위와 같이 신호-반복행동- 보상의 루프를 이해하고 대안을 찾아도 나쁜 습관을 바꾸는건 쉽지가 않다. 습관을 바꾸는 방법을 배우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알아차림'이다.
<크레이빙 마인드>에서는 낡은 습관이 만드는 결과를 명료하게 보고, 아픈 각성의 과정을 거쳐 진정으로 알아차릴 수 있을 때 비로소 낡은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진정으로 낡은 습관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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