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생각을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인양 떠들어대는 사람을 보면 일단 재수없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하나의 생각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열의가 넘치는 모습을 ... 어떻게 보면 과도할 정도로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 재수없다는 생각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또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그럴 때 그 사람은 내게 실제 나이와는 상관없이 젊은 청년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저자, 사사키 아타루에 대한 첫느낌이 딱 그러했다.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의 책일지 도통 짐작이 가지 않는 이 책을 집어들고 첫 번째 밤을 함께 새운 후, 내 느낌을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이 적었다. (이 책은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있는데 하룻밤이 하나의 챕터에 해당한다)
이 책은 책에 대한 책이다.
책에 대한 믿음에 대한 책이다.
믿음? 아니다. 책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책이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점령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책은 대중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인터넷에 정보가 넘치고 모바일 기기가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시대에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책에 대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짧은 글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 맞추기 위해 이제는 책도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나마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 취직이나 성공을 위해 정보를 얻는 목적으로 책을 보는 경우가 또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책이 무시당하고 있는 시대다.
저자 사사키 아타루는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전혀 반대의 이야기를 꺼낸다.
역사를 바꿔 온 혁명의 본질은 책....다시 말해 텍스트이며,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희망도 책이라고...
저자는 인간의 역사를 발전시킨 혁명의 본질이 책 (텍스트) 라는 것을 역사상 중요한 혁명의 실례를 들어 이야기 한다.
라틴어로만 되어있던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마르틴 루터가 어떻게 혁명을 만들어 냈는지...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가 쓴 코란이라는 책이 어떻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
정보와 데이타베이스가 중세해석자 혁명에 빚진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 있는 주제의 이야기지만 저자의 독특한 문제 덕분에 이야기에 빠져서 술술 읽혀지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여름 밤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와인 한 잔을 앞에 놓고 앉아 있는데,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친구가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그 책들을 통해 자신이 얻은 통찰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그 모습이 너무나 열의가 넘치고 확신에 차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에 빠지는 것이다.
책의 뒷 표지에 인용되어 있고 책 속에서 저자가 두 번이나 반복해서 적은 글을
나도 따라 인용해 본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사사키 아타루가 하고 싶은 말의 정수가
이 짧은 글에 잘 표현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철학사상 견줄 것이 없는 걸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최종부인 제4부가
몇 권이나 배포되엇는지 아십니가? 출판사의 버림을 받아 자비로 40부를 찍었고 7부만
지인들에게 보냈습니다. 세계에서 단 7부입니다.
그렇다면 니체는 패배했을까요? 진 걸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그런 건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는 스물여섯 살 때 병에 걸려 대학을 그만두었고, 책을 냈으나 바그너 일파로부터 중상을 받아
전혀 팔리지 않고, 알려지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고, 보상받지도 못하고, 그리고 끝내 발광하여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유폐된 상태에서 죽었습니다.
자신의 명성이 올라간 것도 알지 못한 채.
그게 패배인 걸까요? 아무것도 되지 못한 걸까요?
모든 게 쓸데 없는 것이었을까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니체 자신이 말한 '미래의 문헌학'이라는 것입니다.
작년부터 한 해동안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몇 페이지를 읽었는지 기록하고 통계를 내보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 사사키 아타루 앞에서 1년 동안 몇 권의 책을 읽었다고 자랑하면 한 대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고.... ^^
책은 읽을 수 없습니다. 읽을 수 있다면 미쳐버립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읽는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책이라는 것은 반복해서 읽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것이며,
읽어버리고 말면 미쳐버릴 수 밖에 없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끔 하는 것.
최후에는 고독한 싸움으로 이끄는 것이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 책 읽기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다른 책들과는 전혀 다른 형식이지만
어떤 다른 책보다 저에게는 강력한 동기 부여를 해주네요.
책 좋아하시는 분들게 추천합니다. 신선한 충격을 받으시리라 믿습니다.
읽어버렸기 때문에 쓸 수 밖에 없는 그런 날을 고대하며...
쿤의 별점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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