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에 관한 기사가 인터넷 포털에 뜨면 댓글이 엄청나게 달린다. 그 댓글의 대부분은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코인충’이라 부르며 욕하는 내용이다. 설령 암호화폐를 사고파는 사람들이 ‘투기’를 하고 있다고 해도, 실패했을 때 본인들의 돈을 잃을 뿐이다. ‘코인충’을 욕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물어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본인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데 왜 그들은 로그인을 하고 ‘댓글’을 다는 귀찮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코인충을 욕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들이 암호화폐 투자자를 코인충이라 욕하는 이유는 그들 내면에도 코인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그 마음을 부정하고 타인에게 ‘투사’하기 때문에 코인충을 욕하는 것이다. 이러한 ‘투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보자.
페르소나와 그림자
페르소나는 마음 일부분을 ‘내가 아닌 것’으로 부정할 때 만들어진다. 분노, 성적 충동, 적대감, 공격성, 충동 등과 같은 자신의 특정한 성향을 부정하여 협소해진 자아상을 말한다.
부정한다고 해서 그러한 성향이나 소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소망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 그러한 성향이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고 마치 ’나의 외부’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긴다.
이제 이 사람은 협소하고 빈약하고 부정확한 자기상인 페르소나와만 동일시하며, 소외된 성향을 그림자로서 외부(타인)에 투사하게 된다.
투사(投射) <심리> 자신의 성격, 감정, 행동 따위를 스스로 납득할 수 없거나 만족할 수 없는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 그것을 다른 것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신은 그렇지 아니하다고 생각하는 일. 또는 그런 방어 기제. 자신을 정당화하는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을 이른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마녀사냥과 투사
사람들은 스스로 소외시킨 성향, 즉 그림자를 더욱 강력하게 부정하기 위해 그러한 성향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타인을 공격한다. 이러한 투사에 의해 생겨나는 현상이 바로 마녀사냥이다.
누구나 어두운 측면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어두운 측면’이 ‘나쁜 측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어두운 측면을 갖고 있다고 범죄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약간의 음흉한 면을 갖고 있다. 그런데 마녀사냥꾼은 자신이 음흉한 마음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믿는다. 자신의 그림자를 혐오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하려고 애쓰는 만큼, 그는 자신의 그림자가 투사된 상대방을 지독하게 경멸하게 된다.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녀사냥과 투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을 혐오하고, 심지어 욕설까지 퍼붓는다. 다른 모든 점에서 대단히 예의 바르고 이성적인 사람들이 오직 동성애에 관해서는 극심한 혐오감을 보인다. 그들이 동성애자를 옹호하는 법률의 정지를 아주 격분한 상태로 제창하기도 한다. 하지만 왜 그토록 열성적으로 동성애자를 미워하는 것일까? 그가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것은 자신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비밀스러운 두려움의 일면을 동성애자에게서 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자연스러운 약간의 동성애적 성향을 몹시 불쾌히 여기며 밖으로 투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진 동성애적 성향을 혐오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 속에 있는 그런 성향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무경계> 켄 윌버, p164
마녀사냥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덮어씌운 그 혐오스러운 특징을 자기 자신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난리를 치는 것이다. 그가 끔찍이도 받아들이기 싫은 일면을 마녀사냥의 피해자들이 끊임없이 환기하기 때문에 그들을 혐오하는 것이다.
코인충을 욕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이 코인충을 욕하게 될까?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첫 번째는 코인(암호화폐)에 투자를 하고 싶지만, 여건이 안되어 못 한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투기 자체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주변에서 암호화폐 투자로 돈을 버는 것을 보고 자신도 약간의 관심을 가졌지만, 개인적인 여건이 안되어 투자를 못 한 경우이다. 이때 자신이 투자를 못 한 것을 암호화폐를 사는 것은 투기이고 나쁜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암호화폐 같은 사기에 투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믿는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투기로 돈을 버는 것 자체를 경멸한다. 그런 방식으로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나쁜 일이며, 투기에 빠지는 사람들은 도덕성이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두 부류 모두 본인에게는 투기로 돈을 벌려는 욕심이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쉽게 돈을 벌어 편히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있을까? 이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약간의 이러한 마음에도 저항한다. 그 마음을 부정하기 위해 외부의 대상에게 투사를 한다.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돈 욕심에 눈이 먼 투기꾼, ‘코인충’이라 욕하게 된다.
내 안에 없는 것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쉽게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부정하려고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코인충’이라 욕하는 것이다.
투사의 문제점
자신의 내면에 경계를 긋고 페르소나와 그림자로 분리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모든 경계선은 또한 잠정적인 전선(戰線)이라는 점, 따라서 하나의 경계를 긋는 것은 곧 스스로 갈등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어디에 선을 그을 것인가?”는 실제로 “어디서 전쟁이 일어날 것인가?”를 의미할 뿐이다.
<무경계> 켄 윌버
자신의 내면에 경계를 긋고 그림자를 만들기 시작하면, 본인이 만들어낸 경계의 수만큼 세상에서 적을 만들게 된다. 자신의 순결함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투를 치룰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부정확하고 제약된 자아상으로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돈을 쉽게 벌고 싶다는 마음이 자신에게 없다고 부정하는 사람은 운 좋게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에도 뛰어들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믿음을 고수하기 위해서 그는 힘들게 돈을 벌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보다 더 나쁜 경우는 타인을 공격할 때 일어난다. 자신이 할 때는 정당한 ‘투자’이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나쁜 ‘투기’로 매도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사고방식이다. 자신은 부동산 투기를 하면서, 암호화폐 투자자를 ‘코인충’이라 욕하는 것이다. 내로남불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욕하는 사람들이 가진 특성을 자기 자신도 갖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림자를 인식하고 수용하기
'내로남불’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만든 투사를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만든 그림자를 인식하고 내면에 수용해야 한다.
최근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성 추문에 오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 도덕성에 문제가 있거나, 성적으로 남을 착취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비리를 저지를 위험성이 크다.
자신의 내면에 어두운 면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경계할 때 오히려 나쁜 길을 피해 갈 수 있다. 내 안에 타인을 이용하려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 마음을 경계할 때 타인을 대상으로 보지 않게 된다.
투사를 발견하고 거둬들이는 것은 제약된 페르소나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부정적인 면, 긍정적인 면, 좋은 면, 나쁜 면, 사랑스러운 면과 비열한 면을 포함해 다양한 성향이 내면에 있음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자신에 대해 더 정확한 심상을 발달시킬 수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다양한 면을 수용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다.
참고 도서
<무경계> 켄 윌버 저, 정신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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