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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세계]/책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말은 틀렸다. <굿 라이프>가 밝힌 행복에 대한 오해

by 지평(地平) 2018. 10. 27.
굿라이프 리뷰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는 <행복의 기원> 책에 나와 유명해진 문구다. 서은국 저자는 이 책에서 큰 기쁨이 아니라 여러 번의 작은 기쁨이 행복한 삶을 만든다고 주장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라는 이야기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자주 먹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책의 저자 김민식 PD가 세바시 강연의 제목으로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를 쓰면서 이 말은 한층 더 유명해졌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정말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한 것일까?


굿 라이프,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


<굿 라이프>는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가 <프레임> 이후 12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행복에 대한 오해를 밝히기 위해 나온 책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최인철 교수는 책을 쓴 동기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행복에 관한 책이면서도 제목을 ‘굿 라이프’라고 정한 이유는, 행복을 ‘순간의 기분’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성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행복은 순간의 기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행복이기도 하다. 좋은 음식이 좋은 맛 이상의 것인 것처럼, 삶의 행복은 순간의 행복 이상의 것이다. 행복이 좋은 기분과 좋은 삶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좋은 기분으로서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까지 균형 있게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책의 제목을 의도적으로 ‘굿 라이프’로 정했다.
<굿 라이프> , 최인철 저, p11



서문을 읽으며 나는 마치 이런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행복이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고 하는 소리야. 내가 행복에 대해 제대로 알려줄 테니 들어봐’

<행복의 기원>에 의하면 한국인이 하루 동안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먹는 것과 대화라고 한다. 그 결과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라고 결론 짓는다. 아마도 이 조사 결과는 ‘하루 중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하고, 대답으로 특정 행위가 나온 횟수를 집계하여 나온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빈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질문하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지난 10년 동안 당신이 한 일 중에 당신의 삶을 가장 행복하게 만든 일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먹는 것’과 ‘대화’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삶에서 의미 있는 일, 이루고 싶었던 목표를 성취한 일,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한 일, 진정한 사랑을 경험한 일 등의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행복에는 삶의 의미와 목적의 성취가 필요하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말은 행복을 순간의 좋은 기분(쾌감)만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나오는 주장이다. 굿 라이프, 즉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은 좋은 기분과 함께 삶의 의미와 목적의 성취를 포함한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경험하는 자기(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자기(remembering self)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우리에게는 현재 순간을 경험하는 자기와 나중에 그 경험을 기억하고 회상하면서 새롭게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가 있다. 이렇게 두 가지 자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이다.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만족과 기분을 추구한다는 것이고,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삶 전체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굿 라이프> p143


이 부분을 읽으며 2015년 <메모 습관의 힘> 원고를 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주말마다 아침에 카페로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원고를 쓰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닐 시간도 없었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원고 집필이 잘 진척되지 않아 우울하고 힘들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측면에서 보면 행복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날들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어렵게 그 시기를 버텨내 책을 출간할 수 있었고, 운 좋게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었다. 삶에 의미와 가치를 가져다주는 ‘강도’ 높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작은 기쁨을 느끼는 ’빈도’의 희생이 요구되기도 한다. 삶을 성장시키는 개인 목표를 추구할 때 우리는 우울이라는 터널을 거쳐 가야 한다. 하지만 그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삶은 더 행복해진다. 지금의 나는 그 불행했던 날들 덕분에 행복하다. ‘책 쓰기’라는 의미 있는 목표의 성취가 내 삶을 굿 라이프로 만들었다.


행복은 강도와 빈도 모두다



빈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강도 역시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경험하는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는 좋은 기분을 자주 느낄 수 있는 ‘빈도’가 필요하고, 기억하는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는 의미 있는 성취를 통한 ‘강도’가 필요하다. 의미 있는 성취의 끝에 찾아오는 자부심과 유능감은 행복에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빈도’와 ‘강도’ 모두를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까?
둘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해야 할까?

아니다. 나는 빈도와 강도 모두를 잡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또다시 책을 쓴다면 집필 기간을 이전과는 다르게 보낼 생각이다. 작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일상에 적절히 배치해 ‘빈도’가 주는 행복을 누리면서, 책 쓰기라는 ‘강도’ 높은 목표의 성취가 안겨 주는 행복 또한 얻어낼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좋은 기분을 느끼는 ‘빈도’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목표의 성취를 통한 ‘강도’ 역시 필요하다. 굿라이프,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은 강도와 빈도 모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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