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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세계]/연애심리학

오래된 연인들을 위한 조언 - 사랑을 재발명하라

by 지평(地平) 2018. 1. 21.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하지
가끔씩은 사랑한단 말로 서로에게 위로하겠지만
그런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은 아니야

주말이 되면 습관적으로 약속을 하고
서로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을 하지
가끔씩은 서로의 눈 피해 다른 사람 만나기도 하고
자연스레 이별할 핑계를 찾으려 할때도 있지

- 공일오비 ‘아주 오래된 연인들’ 가사 중에서

오래된 연인들이 헤어지는 이유

서로에게 푹 빠져 있는 연애 초기에는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평소보다 무리를 한다. 회사 일이 바빠도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매일 같이 데이트를 하고, 먼 거리여도 집에까지 데려다 준다. 피크닉 데이트를 위해 전날 장을 보고 도시락을 열심히 준비한다. 기념일마다 이벤트를 준비하고 선물을 안겨 준다. 평소의 ’자기 깜냥을 뛰어넘는 에너지’를 연애에 쏟는다. 연애 초기의 연인들은 자신이 유능하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느끼며, 자신의 중요도가 높아진만큼 큰 쾌감을 얻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에너지는 서서히 고갈된다. 연애 초기 때 무리해서 했던 이벤트들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서로에게 맞추려는 노력도 줄어들고, 매일 같이 하던 전화, 문자도 점점 줄어든다. 관계에서 기쁨을 주던 일들이 점점 줄어든다. 그리고 ’적응’이라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다. ‘적응’이란 어떤 일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이다. 같은 일을 다시 겪을 때에는 처음 경험했을 때만큼 똑같은 강도의 쾌감이 생기지 않는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두 번째 먹을 때에는 처음 먹었을 때의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연애 초기에 강렬한 기쁨을 줬던 일이라 하더라도 나중에 다시 경험할 때는 처음처럼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기쁨을 주는 이벤트의 횟수가 줄어드는데, 같은 이벤트에서 얻는 쾌감의 크기마저 줄어드는 것이다. ‘오래된 연인들’이 관계에서 얻는 쾌감의 수준은 연애 초기보다 현저하게 낮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연애 초기에 경험한 강렬한 쾌감을 다시 느끼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레임을 찾는다면
우리가 느낀 싫증은 이젠 없을거야


- 공일오비 ‘아주 오래된 연인들’ 가사 중에서

쾌감을 여러 번 느끼면 똑같은 유형으로 쾌감을 반복해서 느끼고 싶어하는 ‘집착’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레임’을 다시 찾으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앞에서 설명한 ‘적응’ 메커니즘 때문이다. 이제 식어버린 연애의 원인을 상대에게서 찾는다. 더 이상 나를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 상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금 강렬한 사랑의 쾌감을 경험하기 위해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다.

변화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

연애 관계를 포함해 외부의 원천으로부터 얻는 쾌감이 갖는 문제는 그것이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일단 그 쾌감이 점점 줄어들고 일상의 상태로 돌아가면 예전과 비교되어 더 견디기 어려운 것처럼 느껴진다. ‘변화의 고통’을 겪는 것이다. 변화의 고통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음으로써 생기는 기쁨에 대한 집착에서 일어난다.

’변화의 고통’은 실제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영원히 지속되는 ‘황홀감’을 찾아 끝없이 헤매는 일종의 중독이다.


<티베트의 즐거운 지혜>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p75

어떤 즐거움이 생겼을 때 그 감정은 그 순간 단 한 번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이다. 그런 즐거움은 충분히 만끽한 다음에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잊어버려야 한다. 연애 관계에서 얻는 기쁨을 거부하거나 피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지 않고, 항상 처음 겪는 것처럼 매 순간의 감정을 충분히 맛보고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다. 과거에 자신에게 해줬던 일을 더이상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대신, 연인이 해주는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것이 ‘변화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사랑은 행복이 아니다

사랑은 항상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는 믿음이 문제를 만든다. 연애와 결혼 생활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을 예로 들어보자. 신혼 초에는 둘만의 시간도 충분히 가질 수 있고 서로 불평을 하거나 싸우는 일이 적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면 육아에 시간을 모조리 빼앗긴다. 부부가 다정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사라지고, 육아와 가사 분담 문제로 부부 간에 다투는 일이 잦아진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라면 회사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날들이 늘어나며 육아가 주는 기쁨만큼 고통도 커진다.이러한 상황에서 사랑 = 행복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부부 관계가 위태롭게 된다.

사랑은 행복과 동의어가 아니다. 사랑 안에는 행복과 고통이 함께 뒤섞여 있다.

경이로움과 불확실성의 공존, 행복과 고통의 공존,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을 사랑은 반드시 동시적으로 포함한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본성이다.


- <사랑 예찬> 알래 바디우, p161

둘의 관계가 가져오는 고통과 충돌, 불확실성을 껴앉고, 그것과 지속적으로 대면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에 충실한 길이다.

사랑을 재발명하라

연애가 습관적으로 변할 때 우리는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되어 버린다.

주말이 되면 습관적으로 약속을 하고
서로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을 하지

- 공일오비 ‘아주 오래된 연인들’ 가사 중에서

오래된 연인,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연애 초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습관화되고 고착된 관계에서 벗어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알랭 바디우는 매 순간 ‘둘이 등장하는 무대’를 재연해야 하며, 최초에 선언된 사랑 역시 ‘다시 선언’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사랑은 다시 선언되어야 한다.

둘이 함께 걸으며 만나는 새로운 지점들에서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고통받으면서 ’둘의 지속’을 사유해야 한다.
랭보의 시구에 나오는 표현처럼 ’사랑을 재발명’해야 하는 것이다.

참고 도서 : <사랑 예찬> 알랭 바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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