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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습관의 힘

아날로그 메모 VS 디지털 메모, 뭐가 더 좋지?

by 지평(地平) 2014. 12. 8.

노트 쓰기에 관한 글 (2년간 노트를 쓰며 내게 일어난 변화, 회사 생활이 편해지는 업무 노트 습관)을 올린 후에 많은 분이 댓글로 노트 쓰기에 관한 질문을 주셨어요. 그중 일부는 제가 답변을 달기도 했는데요. 질문하시고 답변을 못 받으신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2개의 글에 달린 댓글이 거의 200여 개라서 일일이 바로 댓글로 답변을 드리기는 힘들더라구요. 짧은 댓글로 설명드리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많이 받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블로그에 하나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페이스북으로 어떤 분이 이런 메시지를 주셨어요.

최근에 저를 뒤돌아보며 제 일상을 좀 통합해서 체계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겠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아이패드를 질렀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나도 한번 부흥해 보자! 아날로그는 그만!’이라고 외치면서요. 그런데 님의 글을 보고 역시 아날로그가 더 나은가 하는 회의감이 곧장 드네요.

크게 마음먹고 아이패드를 사셨는데 제 글을 읽고 잘못 샀나? 회의감이 드셨군요 ^^; 저 때문에 좋은 아이패드 사시고 만족도가 떨어지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제가 이 글을 꼭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손으로 쓰는 아날로그 메모와 앱을 이용하는 디지털 메모, 뭐가 더 좋지?

아날로그 메모 VS 디지털 메모, 과연 어느 쪽을 써야 하는 것일까요?

디지털 펜이 계속 등장하는 이유?

최근에 손 글씨를 디지털화시켜서 저장해주는 디지털 펜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인기를 끈 제품들도 있고, 기능이 만족스럽지 못해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진 제품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계속 여러 회사에서 새로운 디지털 펜이 만들어지고 있죠.

디지털 펜이 왜 계속 만들어지고 있을까요?

디지털 펜이 나온다는 것은 아날로그 메모와 디지털 메모 양쪽 다 부족한 부분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왜냐하면, 디지털 펜은 아날로그 메모와 디지털 메모의 틈을 좁혀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죠.

디지털 펜이 해주는 일을 살펴볼까요?

디지털 펜의 기능

1) 손글씨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여 컴퓨터나 클라우드 저장소에 저장.

2) 손글씨를 문자인식 하여 텍스트로 변환, 검색이 가능하게 만들어줌.

3) 디지털 메모를 손글씨로 할 수 있게 함. 도표, 그림을 펜으로 그릴 수 있게 함.

4) 디지털 메모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없을 때에도 할 수 있음. (메모 후 나중에 sync)

위 4가지 기능은 디지털 펜이 해줘야 하는 기능들입니다. (실제로는 저 4가지를 완벽히 구현하는 펜이 없어서 아직 디지털 펜이 보급이 잘 안 되고 있죠.)

디지털 펜이 해주는 기능에서 1번, 2번은 아날로그 메모가 부족한 부분, 3번, 4번은 디지털 메모가 부족한 부분에 해당합니다.

전용 펜을 쓰지 않아도 되고, 전용 종이에 꼭 쓰지 않아도 되면서, 필기감은 손글씨 느낌 그대로이고, 손글씨와 그림을 완벽하게 디지털화해서 검색가능한 데이터로 저장해주는 디지털 메모 방식이 나온다면 저는 당장 그걸 쓰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이 기준을 모두 만족하는 디지털 메모 방식이 나오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제 결론은 ‘각자 잘하는 것을 하도록 내버려두자’ 입니다.

디지털화된 정보는 디지털 메모로 저장한다

에버노트가 나오면서 가장 편해진 것이 뭐죠?

웹에서 유용한 정보를 발견했을 때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스크랩해서 저장할 수 있죠. 그리고 클라우드 서비스이기 때문에 회사 PC, 집 PC, 스마트폰,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자료를 관리할 수 있는 것도 정말 좋죠.

저도 에버노트 나오자마자 정말 마음에 들어서 열심히 썼습니다. 프로젝트와 관련된 자료들을 웹 검색을 통해 찾으면 에버노트에 바로 저장하고 관리했습니다. 외부에서 일 할 때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아이패드에 에버노트만 가지고 일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간단한 글쓰기도 전부 에버노트로 했었죠.

디지털화된 정보의 기록/관리에는 디지털 메모를 사용합니다.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는 정보는 디지털 메모 앱으로 간편히 저장하는 것이 당연히 편합니다. 디지털화되어 있는 문서 파일도 마찬가지지요.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는 정보를 기록하려고 아날로그 메모를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메모에도 단점이 있습니다.

특정한 디지털 메모 앱/서비스에 종속된다

저는 에버노트를 열성적으로 쓰다가 최근에는 좀 덜 쓰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에버노트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죠. 요즘 보안 문제 때문에 에버노트나 구글 드라이브와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차단해서 못 쓰게 하는 기업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에버노트를 쓸 수 없으니 정보 수집/관리의 도구로서 에버노트를 핵심으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디지털메모 앱은 아니지만 업무 관리 목적으로 쓰던 Things나 Clear 앱을 예로 들어 볼게요. 이 앱들은 Mac OS나 iOS에만 있습니다. 제가 안드로이드 폰으로 바꾸고 나니까 더는 이 앱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Wunderlist와 같은 OS를 타지 않는 목록 관리 앱으로 갈아탈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앱을 만드는 회사가 망해서 서비스가 종료될 수도 있습니다. 한때 에버노트와 경쟁을 관계이기도 했던 Springpad 가 그런 사례였죠.

물론 이런 경우를 미리 걱정해서 디지털메모를 쓰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너무 특정 서비스 하나에 의존하는 것은 risk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날로그적 상황에서는 아날로그 메모가 편하다

제가 노트에 쓴 내용을 살펴보면 주로 다음과 같습니다.

책 읽으면서 내용 정리

세미나 들으면서 중요 내용 메모

미팅에서 회의록 작성

아이디어 메모 (도표와 그림 사용)

종이 책을 읽으면서 노트북을 열고 타자를 하는 것보다는 그냥 노트에 손으로 옮겨 적는 것이 편합니다.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거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훨씬 수월하죠.

세미나를 들을 때에도 노트북으로 내용을 메모하는 것보다는 노트에 쓰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합니다. 도표와 그림도 따라 옮기기 쉽지요.

미팅이나 인터뷰를 하는데 노트북을 열고 적는 것은 어떤가요? 상대방이 불편해할 수도 있습니다. 손으로 노트에 메모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죠.

아날로그적 상황에서는 아날로그 메모가 자연스럽고 편합니다.

머릿속 생각을 정리할 때도 노트가 좋습니다. 머릿속 생각은 텍스트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잖아요. 생각이 이미지로 떠오를 때도 있죠. 생각을 옮기는 데에는 손으로 쓰고 그리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손으로 노트에 쓰면 비주얼씽킹이 가능합니다. 디지털 메모로는 아직 그림을 그리면서 하기가 쉽지 않죠. 생각 정리를 위한 메모는 손으로 직접 쓰면서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는 정보에 약간의 첨삭을 해서 메모하는 것은 디지털 메모가 좋지만, 세미나와 미팅, 종이 책의 내용을 적는 아날로그적인 상황에는 종이 노트에 손으로 적는 것이 훨씬 편하고 효과적이기 때문에 저는 노트에 메모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 메모의 검색

아날로그 메모의 단점은 역시나 검색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최근 정보를 찾는 데는 노트가 더 편할 때도 잦습니다. 그냥 슬쩍 훑어 보면 되니까요. 언제 기록했는지 시점까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곤란한데, 이를 대비해서 내용 색인을 만들어 두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노트 색인을 만들어 사용하기

저는 구글 문서의 스프레드시트에 노트 색인을 만들고, 이를 프린트해서 각 노트의 표지 뒷면에 붙여 두었습니다. 구글 문서에 들어가 키워드로 검색하거나 노트 뒷면에 붙여둔 색인을 보면서 어느 노트, 어느 위치에 해당 주제의 메모가 있는지를 찾습니다. 디지털메모 앱의 검색 기능보다야 불편하지만, 그런대로 쓸만합니다.

아날로그 메모를 스캔하여 에버노트에 저장

또 하나의 방법으로 이미 많은 분들이 쓰시는 방법으로 아날로그 메모를 스캔하여 에버노트에 저장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에버노트는 프리미엄 서비스(유료)를 이용하면 문서 내 첨부파일의 텍스트를 검색할 수 있습니다. 첨부한 이미지 파일의 손으로 쓴 글씨도 텍스트로 인식이 가능합니다. 손글씨로 메모한 노트를 스캐너로 스캔하거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후에 에버노트에 저장하면 에버노트의 검색 기능으로 원하는 메모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요즘은 스마트폰의 스캐너앱(CamScanner, TurboScan) 성능이 좋아서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도 훌륭하게 노트 스캔이 가능하더군요.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스캔 이미지를 에버노트에 저장할 때 문서의 제목과 태그를 노트의 내용에 맞게 잘 지정해 주시면 됩니다.

아날로그 메모 - 디지털 메모, 같이 쓰면 안 돼?

현재 제가 쓰고 있는 메모 방법을 정리해 봤습니다.

제가 노트 쓰기 관련 글을 올리니까 디지털 메모 앱을 쓰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요. 저는 디지털 메모 앱도 많이 씁니다.

아날로그 메모, 디지털 메모 중에서 굳이 꼭 한 쪽만 쓸 필요는 없잖아요. 모든 데이터를 디지털화해서 저장하려는 욕심을 좀 버리시면 됩니다. 저장만 해두고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쉽게 번 돈이 쉽게 나가는 것처럼,
쉽게 저장한 데이터는 쉽게 잊힙니다.

아날로그 메모는 일단 손으로 옮겨 적을 때 1차 편집 과정이 들어가고, 쓰면서 그 내용을 다시 보기 때문에 기억에 훨씬 잘 남고, 나중에 활용도가 높습니다.

디지털 메모의 경우에도 그냥 스크랩만 해두지 말고, 간단하게 설명을 추가하거나 주기적으로 유용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편집/분류하는 시간을 들여야 활용도가 높아집니다.

저는 아날로그 메모와 디지털 메모를 어느 한쪽만 써야 하는 배타적인 관계로 보지 않습니다. 서로 장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날로그 메모와 디지털 메모를 같이 쓰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Bonus : 아이패드의 활용도에 관하여

질문을 주셨던 분이 아이패드의 활용도에 대해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아서, 추가로 아이패드의 쓸모에 관한 제 생각을 써봅니다.

아이패드는 집이나 사무실 외부에서 디지털 메모 작성/열람이 필요한 분에게 유용합니다. 단, 노트북을 갖고 다니는 분들에게는 필요성이 떨어집니다. 노트북을 갖고 다니지 않는 분들이, 이동 중이나 외부 장소에서 디지털 메모를 활용할 때 좋습니다. 글쓰기용으로도 충분히 쓰실 수 있습니다. 이때는 휴대용 블루투스 키보드가 필요합니다. 터치 자판으로 긴 글을 쓰는 것은 힘듭니다.

그리고 iThoughtsX와 같은 마인드맵 앱을 쓸 때 아이패드가 참 좋습니다. 손가락으로 항목을 직접 이동시키면서 마인드맵을 그리는 것이 생각을 이동/편집하는 느낌을 줘서 노트북에서 마우스/패드로 하는 것보다 더 직관적입니다.

아이패드에도 터치펜으로 손글씨 메모를 할 수 있는 앱들이 꽤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있던 문서에 주석을 달거나 줄을 긋는 용도로는 쓸만하지만, 종이에 펜으로 쓰는 것을 대체할 만큼 편하지는 않습니다. 아날로그 메모를 대체할 수준은 아닙니다.

본인에게 아이패드가 필요한지 아닌지는 사무실이나 집이 아닌 곳(내 노트북이나 PC가 없는 상황)에서 디지털 메모나 정보 활용이 필요한 상황이 얼마나 자주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아이패드가 문제가 아니고, 필요한 상황이 없는 내가 문제인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아이패드는 사두면 다 쓸데는 있어요. 아이패드, 원래 최고의 게임 머신 아니던가요? ^^;

오늘의 결론
: 아날로그 메모 VS 디지털 메모, 어느 쪽이 더 좋다 싸우지 말고 같이 잘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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