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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쓰는 사람'의 비밀, 메모 (5)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믿었다.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소설가, 시인, 기자 같이 글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나 글을 쓰는 거라 생각했다. 글쓰기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겼다. 그런데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그 생각이 흔들렸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통해 접하는 글 중에는 글쓰기와 상관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쓴 글이 많았다. 소셜미디어의 시대에 글쓰기는 작가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글을 쓰고 공유할 수 있었다.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글을 쓰며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었고,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그 사람들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의욕과 달리 실제로 글을 쓰기는 쉽지 않았다. 키보드 앞에 한참을 앉아 있어도 뭘 써야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 문단을 채 쓰지 못하고 편집기 창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누구나 글을 쓰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쓰지 않던 사람이 그 ‘누구나’에 포함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어떻게 해야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과 쓰지 못하는 사람은 뭐가 다를까?’ 어떤 차이가 글 쓰는 사람을 만드는지가 궁금했다.

‘쓰는 사람’이 되는 방법의 실마리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메모’였다. 몇 년 전 나는 개인적인 기록을 남길 목적으로 노트를 장만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독서 메모를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줄을 쳤던 문장을 노트에 옮겨 쓰고,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했다. 외부 강연이나 세미나를 들을 때도 노트에 부지런히 메모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도 바로바로 노트에 적었다. 버스나 지하철처럼 노트를 펼쳐 쓰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스마트폰 앱에 메모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친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고,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했다.

이동 중에 스마트폰 앱에 남긴 메모들. 작은 메모들이 모여 나를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메모를 일 년 넘게 하면서부터 신기한 일이 생겼다.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노트에 쓴 메모들이 글의 소재가 되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꾸준히 메모해 놓았더니 소재가 없어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없어졌다. 노트에 메모 된 다양한 정보와 생각들을 결합해서 글을 쓰다 보니 글의 품질도 좋아졌다. 블로그에 쓴 글이 포털 다음의 메인 화면에 종종 소개되었고, 페이스북을 통해 글이 널리 공유되면서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었다. 단지 메모를 꾸준히 했을 뿐인데 나는 어느새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메모는 어떻게 글을 쓰지 않던 사람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까? 쓰는 사람과 쓰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축적된 생각의 양에 있다. 글은 축적된 생각에서 나오고, 생각의 수집을 도와주는 도구가 바로 메모다. 글쓰기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문장을 올바르게 고치는 방법을 배운다고 글을 잘 쓰게 되는 것도 아니다. 문장력을 키우는 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나만의 생각을 모으는 일이다. 내 안에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 차올라야 한다. 나만의 생각이 충분히 축적되고 나서야 비로소 글이 나온다. 메모로 내 생각과 경험을 붙잡아 수집해둬야 글쓰기에 사용할 수 있다.

노트에 생각을 수집하자. 노트에 축적된 생각이 글로 변한다.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책에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글쓰기에 독서가 왜 필요한가? 본보기가 되는 문장을 많이 읽는 것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독서가 필요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독서가 생각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책이라는 외부자극에 나 자신이 반응하여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 생각을 메모해두면 글쓰기의 소재가 된다.

<수상록>의 저자 몽테뉴는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그 다양한 내용을 읽는 것이 나의 생각하는 능력을 자극하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1] 그는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책의 여백에 메모했다. <수상록>에 실린 글들은 책에 적은 메모로부터 나왔다. 조선 시대의 실학자이며 <여유당전서>를 남긴 다산 정약용은 초서(抄書)와 질서(疾書)를 중시했다. 초서는 책의 문장을 옮겨 적는 것이고, 질서는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는 것이다. 초서와 질서를 통해 정약용은 엄청난 분량의 저술을 남길 수 있었다. 문인 장석주도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했다가 책을 쓴다고 말한다. “매일 다섯 시간씩 책을 읽는데, 그때마다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모두 메모하죠. 그러다가 출판사 제안서가 오면 그때 계약해요.”[2] 메모는 ’쓰는 사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생각을 수집하기 위해 메모를 해왔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생각을 수집하는 일부터 해보자. 일상생활에서 관찰하고 느낀 것들을 노트에 메모하자.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노트에 메모해 보자. 노트에 생각이 가득 차서 넘칠 때가 되면 자연스레 글이 쓰고 싶어질 것이다. 메모가 ‘쓰는 사람’을 만든다.

인용 출처
[1] <위로하는 정신> 슈테판 츠바이크 저, 유유, 108쪽
[2] <명사들의 문장강화> 한정원 저, 나무의 철학, 249쪽

** 인문 포털 인문360 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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