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방법'에 해당되는 글 2건

  1. '쓰는 사람'의 비밀, 메모 (5)
  2. 대가들의 글쓰기 조언이 효과가 없는 이유 - 김연수 산문 <소설가의 일> (8)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믿었다.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소설가, 시인, 기자 같이 글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나 글을 쓰는 거라 생각했다. 글쓰기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겼다. 그런데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그 생각이 흔들렸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통해 접하는 글 중에는 글쓰기와 상관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쓴 글이 많았다. 소셜미디어의 시대에 글쓰기는 작가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글을 쓰고 공유할 수 있었다.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글을 쓰며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었고,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그 사람들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의욕과 달리 실제로 글을 쓰기는 쉽지 않았다. 키보드 앞에 한참을 앉아 있어도 뭘 써야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 문단을 채 쓰지 못하고 편집기 창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누구나 글을 쓰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쓰지 않던 사람이 그 ‘누구나’에 포함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어떻게 해야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과 쓰지 못하는 사람은 뭐가 다를까?’ 어떤 차이가 글 쓰는 사람을 만드는지가 궁금했다.

‘쓰는 사람’이 되는 방법의 실마리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메모’였다. 몇 년 전 나는 개인적인 기록을 남길 목적으로 노트를 장만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독서 메모를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줄을 쳤던 문장을 노트에 옮겨 쓰고,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했다. 외부 강연이나 세미나를 들을 때도 노트에 부지런히 메모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도 바로바로 노트에 적었다. 버스나 지하철처럼 노트를 펼쳐 쓰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스마트폰 앱에 메모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친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고,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했다.

이동 중에 스마트폰 앱에 남긴 메모들. 작은 메모들이 모여 나를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메모를 일 년 넘게 하면서부터 신기한 일이 생겼다.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노트에 쓴 메모들이 글의 소재가 되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꾸준히 메모해 놓았더니 소재가 없어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없어졌다. 노트에 메모 된 다양한 정보와 생각들을 결합해서 글을 쓰다 보니 글의 품질도 좋아졌다. 블로그에 쓴 글이 포털 다음의 메인 화면에 종종 소개되었고, 페이스북을 통해 글이 널리 공유되면서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었다. 단지 메모를 꾸준히 했을 뿐인데 나는 어느새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메모는 어떻게 글을 쓰지 않던 사람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까? 쓰는 사람과 쓰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축적된 생각의 양에 있다. 글은 축적된 생각에서 나오고, 생각의 수집을 도와주는 도구가 바로 메모다. 글쓰기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문장을 올바르게 고치는 방법을 배운다고 글을 잘 쓰게 되는 것도 아니다. 문장력을 키우는 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나만의 생각을 모으는 일이다. 내 안에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 차올라야 한다. 나만의 생각이 충분히 축적되고 나서야 비로소 글이 나온다. 메모로 내 생각과 경험을 붙잡아 수집해둬야 글쓰기에 사용할 수 있다.

노트에 생각을 수집하자. 노트에 축적된 생각이 글로 변한다.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책에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글쓰기에 독서가 왜 필요한가? 본보기가 되는 문장을 많이 읽는 것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독서가 필요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독서가 생각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책이라는 외부자극에 나 자신이 반응하여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 생각을 메모해두면 글쓰기의 소재가 된다.

<수상록>의 저자 몽테뉴는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그 다양한 내용을 읽는 것이 나의 생각하는 능력을 자극하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1] 그는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책의 여백에 메모했다. <수상록>에 실린 글들은 책에 적은 메모로부터 나왔다. 조선 시대의 실학자이며 <여유당전서>를 남긴 다산 정약용은 초서(抄書)와 질서(疾書)를 중시했다. 초서는 책의 문장을 옮겨 적는 것이고, 질서는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는 것이다. 초서와 질서를 통해 정약용은 엄청난 분량의 저술을 남길 수 있었다. 문인 장석주도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했다가 책을 쓴다고 말한다. “매일 다섯 시간씩 책을 읽는데, 그때마다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모두 메모하죠. 그러다가 출판사 제안서가 오면 그때 계약해요.”[2] 메모는 ’쓰는 사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생각을 수집하기 위해 메모를 해왔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생각을 수집하는 일부터 해보자. 일상생활에서 관찰하고 느낀 것들을 노트에 메모하자.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노트에 메모해 보자. 노트에 생각이 가득 차서 넘칠 때가 되면 자연스레 글이 쓰고 싶어질 것이다. 메모가 ‘쓰는 사람’을 만든다.

인용 출처
[1] <위로하는 정신> 슈테판 츠바이크 저, 유유, 108쪽
[2] <명사들의 문장강화> 한정원 저, 나무의 철학, 249쪽

** 인문 포털 인문360 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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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작가들이 전하는 글쓰기 조언 4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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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대가들로부터 배우는 5가지 글쓰기 팁’
‘좋은 글을 쓰기 위한 4가지 조언’

최근 몇 달 동안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글 잘 쓰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글이 눈에 많이 띈다. 큐레이션 사이트들에도 글쓰기 관련 글이 자주 올라온다. 트래픽을 쫓는 큐레이션 사이트에 글쓰기에 관한 글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찾는 이가 많다는 이야기다. 글쓰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가들의 글쓰기 조언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정말 저런 조언들을 읽고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소설가가 되는 법

‘이렇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다’라고 알려주는 글을 나는 참 많이 읽었다. 글쓰기 방법에 관한 글이라면 일단 스크랩을 해두곤 했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눈에 띌 때마다 읽어왔지만, 나의 글쓰기 수준은 좀처럼 변화가 없다. 대체 왜 그런 걸까? 글쓰기에 관한 글들이 다 가짜여서 그럴까?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에서 나는 그 해답을 찾았다.

재능이라는 소설기계는 소설을 만들지 않는다. 소설기계 역시 소설가의 죄책감이나 꺼림칙함을 덜어주기 위해서 고안된 기계다. 소설을 쓰지 않기 위한 방법 중에서 재능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죄책감이 없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p23)

먼저 소설가가 되어야만 소설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먼저 뭔가를 써야만 소설가가 될 수 있다. (p104)

나는 소설가는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타고난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은 소설을 쓰지 못한다고 당연하게 결론 지었다. 소설이 아닌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를 위한 타고난 재능이 나에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글을 잘 쓰는 방법 O가지’류의 글을 부지런히 찾아 읽는다. 타고난 재능이 없으니 대가들의 조언에서 뭔가를 배워야만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연수 작가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재능이 있어야 소설가가 되어 소설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먼저 뭔가를 써야만 소설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글쓰기에 관한 수많은 조언의 글이 효과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글쓰기에 관한 글을 소비하는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열심히 찾아 읽으면서 정작 글을 쓰는 데는 시간을 쓰지 않는다.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新人),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 (p19)

글을 못 쓰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키보드 자판을 앞에 두고 버틴 시간이 나에게 충분히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헨리 밀러의 소설 쓰기 11계명

김연수 작가는 재능에 대해서는 그만 떠들라면서 헨리 밀러의 11계명을 소개한다. 헨리 밀러가 1932년 자신의 첫 소설인 <북회귀선>을 쓰면서 창안한 11계명이다.

헨리 밀러의 소설 쓰기 11계명

  1. 한 번에 하나씩 일해서 끝까지 쓰라.

  2. 새 소설을 구상하거나 <검은 봄>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지 마라. (검은 봄은 헨리 밀러의 두 번째 소설)

  3. 안달복달하지 마라. 지금 손에 잡은 게 무엇이든지 침착하게, 기쁘게, 저돌적으로 일하라.

  4. 기분에 좌우되지 말고 계획에 따라서 작업하라. 정해진 시간이 되면 그만 써라!

  5. 새로 뭘 만들지 못할 때도 일은 할 수 있다.

  6. 새 비료를 뿌리기 보다는 매일 조금씩 땅을 다져라.

  7. 늘 인간답게! 사람들을 만나고, 이런저런 곳에 다니고, 내킨다면 술도 마셔라.

  8. 짐수레 말이 되지 마라! 일할 때는 오직 즐거움 만이 느껴져야 한다.

  9. 그러고 싶다면 계획을 따르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다음 날에는 다시 계획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몰입하라. 점점 좁혀라. 거부하라

  10. 쓰고 싶은 책들을 잊어라. 지금 쓰고 있는 책만을 생각하라.

  11. 언제나 제일 먼저 할 일은 글을 쓰는 일.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는 등, 다른 모든 일들은 그 다음에.

글쓰기는 다른 욕구와의 싸움이다. 헨리 밀러 같은 작가도 첫 번째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서 11계명이 필요했다.

글을 정말 잘 쓰고 싶다면 내 인생에서 글쓰기가 차지하는 우선순위를 높이자.

다른 일의 비중을 줄이고 글을 쓰는 시간을 늘리자. 다른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글쓰기도 잘하고 싶다는 것은 욕심이다. 지금 쓰고 있는 글에만 집중하자.

생각하지 말자. 일단 쓰자.

대가들의 글쓰기 조언을 읽어도 나의 글쓰기 실력이 달라지지 않는 것은 그들의 말이 틀려서가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내가 글을 쓰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말들이 소용이 없을 뿐이다.

어떤 글쓰기에 대한 조언도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을 도와줄 수는 없다.

  1. 생각하지 말자. 생각을 생각할 생각도 하지 말자.

    실제 문자로 써보기 전까지는 어떤 구상이나 생각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무리 멋진 소재를 안다고 해도, 남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험을 경험했다고 해도, 아무도 모르는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해도, 쓰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생각하지 말자. 구상하지 말자. 플롯을 짜지 말자. 캐릭터를 만들지 말자. 일단 한 문장이라도 쓰자. (p199)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글을 쓰자. 일단 쓰자.
쓰고나서 생각하자. 그리고 고쳐 쓰자.

* 본 글의 인용문은 김연수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서 발췌하였습니다.

PS. 위 글에서는 <소설가의 일> 책의 일부분만 인용했는데요.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서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소개를 드립니다.

  • 김연수 작가가 어떻게 소설을 쓰고 소설가가 되었는지
  • 일단 쓴 글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 소설의 플롯, 캐릭터는 어떻게 만드는지
  • 소설의 문장은 다른 글과 어떻게 다른지, 소설의 문장은 어떻게 쓰는 것인지
  •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 독자가 소설 속 주인공을 사랑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 소설의 본질은 무엇인지

소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소설의 문장을 쓸 수 있는 방법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방법론을 딱딱하게 다룬 책은 아니고요. 김연수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다양하게 들어 있고, 글에 유머도 있어서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저는 책에 제가 줄 친 부분이 많으면 정말 좋은 책이라고 판단하는데, <소설가의 일>은 줄쳐진 페이지가 너무 많네요. 이 책 하나만 가지고도 블로그 글 여러 편 쓸 수 있겠어요. 소설이나 글쓰기에 관심 있는 분들께 권할만한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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