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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세계]/책

상담의 효과는 어디에서 오는가?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by 지평(地平) 2014. 11. 17.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은 재밌습니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서 손에서 놓지 못할 정도로 이야기에 흡입력이 있는 소설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야기 실력에 정말 감탄이 나오죠. 재미만 있는 것도 아니고 따뜻한 감동까지 안겨줍니다. 정말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좋은 소설입니다.

그리고 저같이 상담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상담의 효과는 어디에서 오는가?

이 소설에서 상담을 해주는 사람들은 전문 상담가가 아닙니다. 동네 잡화점의 주인 할아버지, 강도짓을 하고 도망치던 도둑 3인조가 나미야 잡화점에 고민 상담 편지를 보낸 이들의 상담을 해주죠. 나미야 잡화점에 고민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상담을 통해 저마다 해답을 찾습니다. 자신에게 상담을 해준 사람이 상담을 직업으로 삼은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담의 효과가 있었던 것이죠.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상담의 치료 요소 13가지

가필드(S. L. Garfield, 1995)는 여러 가지 심리 치료 접근법들이 각기 다른 이론적, 방법론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치유력을 공유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상담과 심리치료의 치료 요소를 13가지로 제시하였습니다.

  1. 치료 관계 (Therapeutic Relationship)
  2. 해석, 통찰, 이해 (Interpretation, Insight and Understanding)
  3. 정화, 정서의 표현과 발산 (Catharsis, Emotional Expression and Emotional Release)
  4. 강화 (Reinforcement)
  5. 둔감화 (Desensitization)
  6. 직면 (Confronting One’s Problem)
  7. 인지적 수정 (Cognitive Modification)
  8. 이완 (Relaxation)
  9. 정보제공 (Information)
  10. 안도와 지지 (Reassurace and Support)
  11. 기대감 (Expectancies as a Therapeutic variable)
  12. 시간 (Time as a Therapeutic variable)
  13. 위약 효과 (Placebo response)

다양한 심리 치료법들의 공통적 치료 요소들만을 모은 것인데도 13가지로 꽤 많지요? 이 중 몇 가지만 있어도 상담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전문적 상담 수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 상담을 할 경우에도 상담이 때때로 효과를 가질 수 있는 이유죠. 하지만, 상담 기간을 줄이고, 상담의 실패율을 낮추고, 상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13가지 치료 요소들을 골고루 잘 갖추고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상담자는 자신의 상담 스킬을 향상시키고 심리 치료 기법들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13가지 치료 요소보다 훨씬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키나?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 나미야씨는 비록 상담을 하는 법에 대해 배운 적은 없지만, 자신에게 상담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입니다. 상담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매일 밤 긴 시간을 들여 고심하고 답변을 해줍니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p159

나미야씨에게는 상담을 의뢰한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진심어린 바람이 있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존중’, ‘사랑’이 나미야씨의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에 나미야씨에게 상담을 받은 사람들은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 The Road Less Traveled> 에서 스캇펙은 정신 치료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이제 정신 치료를 효과적이고 성공적으로 만드는 그 본질적인 요소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무조건 적극적인 말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신기한 마술적인 말도 아니고 기술도 자세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인간적인 참여요, 투쟁이다. 그것은 치료자가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져 환자의 성장을 도와주기 위해 감정적인 관계에 뛰어 들어, 환자와 자기 자신과 투쟁해 나가고자 하는 의욕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성공적이고 의미 있는 정신 치료의 근본적인 요소는 사랑인 것이다.


- <아직도 가야할 길> (스캇펙 저/신승철, 이종만 공역), p253

상담 전문가든 초보 상담가이든 내담자에 대한 ‘사랑’이 있느냐 없는냐가 성공적인 치료를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담자를 ‘사랑’할 수 있는 치료자이냐, 아니냐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인턴 상담원 수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1년 동안 매주 토요일 상담 센터에 나가서 내담자를 만나고, 심리상담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맡은 내담자의 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어떨 때는 하루에 한 명의 내담자를 상담한 적도 있었고, 많아도 하루에 4명을 넘지는 않았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실제로 상담을 하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던거죠. 하지만 그 당시는 정말 주중에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할 때에도 제 내담자에 대해 생각뿐이었습니다. 내담자의 상담 내용을 다시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상담을 더 잘 진행해서 내담자를 도와줄 수 있을까만 생각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저는 상담 기술도 부족하고, 심리치료 기법을 능숙하게 사용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상담한 내담자들이 상담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상담이 성공적으로 종결되었습니다. 내담자가 이제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더 이상 상담을 받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할 때 저는 정말 기뻤습니다. 저는 제 내담자들을 사랑했던 것이죠. 인턴 상담원 시절의 경험을 통해 저는 사랑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은 의지적 행동입니다. 실제로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사랑이 커진다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상담의 효과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직도 가야할 길> 에서 스캇펙은 ‘사랑’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북돋아 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

- <아직도 가야할 길> (스캇펙 저/신승철, 이종만 공역), p113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상담의 효과는 어디에서 올까요?

사람은 사람을 통해 변화합니다.
상담의 효과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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